[책요약] 후흑학 - 신동준 (이종오)
중국 청나라 말에 이종오라는 인물이 저술한 책.
중국 역사 속 여러 사건들을 분석하여 정립한 '난세의 통치술 + 처세술'이다. 혼란스러웠던 청나라 말기에 후흑술로 나라를 구하는 '후흑구국'을 염원하며 적은 책이라고 한다.
참고로 후흑은 두꺼운 얼굴(면후 面厚)과 시커먼 속마음(심흑 心黑) 즉, 면후심흑을 줄인 말이다. 생각과 의도를 숨긴 채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방법론 정도로 이해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후흑에는 3단계가 있다.
(1단계) 얼굴이 성벽처럼 두껍고 속마음이 숯덩이처럼 검은 단계이다. 안색이 혐오스러워 사람들이 접근하길 꺼리는 초보적인 단계이다.
(2단계) 얼굴이 두꺼우면서 딱딱하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맑은 단계이다. 얼굴이 두꺼운 데는 유비를, 속마음이 검은 것에는 조조를 꼽는다. 유비, 조조와 같은 인물이 2단계에 해당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지만, 겉으로 티가 날 수밖에 없는 단계이다.
(3단계) 얼굴이 두꺼우면서도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색체가 없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사람들은 그가 후흑과는 반대되는 인물이라고 믿게 된다.
중국 역사에서 후흑으로 대표되는 사람은 '와신상담'의 구천이 있다.
구천은 오나라의 부차에서 패한 후 미인과 재물을 보내는 등 겉으로는 부차를 섬기면서, 안으로는 장작 위에서 잠자고 곰의 쓸개를 핥으며 굴욕을 되새긴다.
결론은 잘 알려진 것처럼 부차를 자결하게 만들고 복수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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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인물로 삼국지의 사마의가 있다.
중국 삼국시대는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이 위나라를 전복한 후 진나라를 건국하고 오나라를 멸망시켜 통일왕조를 세우면서 끝난다.
사마의는 조조, 조비, 조예, 조방까지 4대에 걸친 위나라 황제를 섬기면서도 야망을 들어내지 않는다. 이후 '고평릉 사변'이라고 불리는 정변을 일으켜 당시 위나라의 정권의 핵심이었던 '조상'을 몰아내고 진나라의 기틀을 만든다.
'고평릉 사변'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조상'은 사마의를 경계하였다. 하지만, 사마의는 병이 심해 정신이 맑지 않은 척 연기하여 '조상'의 경계를 허물고 정권을 찬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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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야사 속의 흥선대원군 정도가 있겠다.
흥선대원군은 권세가들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 '상갓집 개'라는 별명을 얻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집권을 준비하여 아들을 왕으로 세우고, 본인은 섭정을 하게 된다.
이러한 흥선대원군의 태도 역시 후흑이 되겠다(다만, 흔히 알고 있는 흥선대원군의 행보는 '야사'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나름 모범적인 왕족이었다고 한다).
책 후반부에는 후흑의 실행 방법 9가지가 나온다;
① 공(空) 위기에 빠져나갈 퇴로를 만들라
② 공(貢) 반룡부봉(힘 있는 사람에게 기대는 것)하되 역린을 조심하라
③ 충(沖) 호언장담으로 기선을 제압하라
④ 봉(捧) 박수갈채로 자부심을 만족시켜라
⑤ 공(恐) 솜에 비늘을 숨기고 때를 노려라
⑥ 송(送) 비자금을 활동자금으로 활용하라
⑦ 공(恭) 사람을 가려 때에 맞게 칭찬하라
⑧ 붕(繃) 큰 인물로 포장해 신뢰케 만들라
⑨ 농(聾) 귀머거리 흉내로 속셈을 감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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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대의 직장생활에서 상사와 부하의 처세술이 나온다.
(상사) 부하에게 의중을 보이지 마라 / 부하의 재능을 적극 활용하라 / 부하를 널리 포용하라
(부하) 상사의 의중을 헤아려라 / 상사에게 공을 돌려라 / 끝까지 충성하라
상사는 들키지 않아야 하고, 부하는 눈치가 빨라야 한다... 어렵다...
책의 문체가 제법 강한 편이다. 그래서 후흑에 동조하는 사람에게는 직관적으로 읽힐 것이고, 반대 입장의 사람에게는 품격이 낮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감정적 요인들을 싹 걷어내고 읽는다면 '빠른 눈치'와 '포커 페이스', 그리고 대국을 읽는 '선경지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후흑의 명가들로 소개된 인물들의 끝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에서 뭔가 찜찜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자리에 올라선 이후에도 후흑술을 잘 실천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즉, 주변의 사람들에게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주변인들을 적극 활용하고, 포용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결국에는 '성인군자'로 칭송받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