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미치도록 잡고 싶다 - 정락인

사건기자로서 다양한 사건들을 다뤄왔던 기자가 쓴 미제사건 모음집. 책에서 소개하는 많은 사건들이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된 건들이다.
'개구리 소년', '치과의사 모녀 사건', '그놈 목소리'라는 영화로 제작된 '이형호 군 유괴 살인사건' 등 당시 사회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사건들의 사실관계, 경찰의 대응, 범인들이 남긴 증거 등을 매우 상세하게 적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공소시효란 범죄가 발생된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국가의 소추권을 소멸시켜 공소제기를 못하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공소시효 제도는 이해가 쉽지 않다. 분명 범죄가 발생했었고, 심지어 누가 범인인지 아는 경우에도 처벌할 수 없다. 왠지 비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들이 공소시효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오래된 범죄에 수사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효율성이 낮으며, 증거가 훼손/분실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어떠한 행위를 범죄라고 선언했던 국가 공권력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범죄를 계속 손에 쥐고 있는 것도 문제가 된다. '언제 적 얘기를 이제야 들고 와서....'라는 변명이 가능한 문제라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긴 시간 동안 본인의 범행이 발각될까 두려워 사회에서 숨어 살고 심리적으로 고통받는 것도 공소시효의 근거가 된다. '처벌'과 '교화'라는 형사처벌의 효과를 자연스럽게 달성했다는 취지이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범죄에 대한 대중의 잣대가 훨씬 엄격해졌고, 수사기법 역시 엄청나게 발전하였다. 과거에는 보관하기 어려운 증거물도 반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으며, 기존 기술로는 절대 찾을 수 없었던 범행의 흔적들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다. 또한 수사기법의 발전이 수사효율을 끌어올린 덕분에, 이제는 장기미제 전담반 같은 조직을 운영할 정도까지 되었다. 특히 아무리 잔혹한 범죄라도 일정 시간만 지나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사회 일반의 정의 관념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널리 자리 잡았다.
이러한 대중의 요구와 개선된 수사기법 등이 반영되어 우리나라 역시 살인과 같은 중대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한 바 있다.
이렇듯 모든 상황이 '공소시효'라는 제도의 설 자리를 조금씩 줄여 나가고 있다. 하지만 공소시효가 폐지된다고 하여 모든 범죄의 범인이 잡히는 것은 어니다. '장기미제' 사건의 존재 자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기술적 요소 이외의 것이 하나 더 필요하다. 바로 대중의 관심이다.
아무리 오래된 범죄라고 하여도 대중들이 관심을 갖는 사건은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화성 연쇄 살인사건과 같이 끝끝내 진범이 밝혀지기도 한다.
본 책 역시 이와 같은 이유로 출판한 것이라고 한다.
책에서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전달하고, 미제 사건들이 발생한 원인과 각 사건의 단서들을 분석하고 있다. 특히, 초동수사에서의 실수, 사회적 편견 등 사건 해결의 장해요소 등을 있는 그대로 적시하면서 유사한 일의 발생에 경각심을 더해 주기도 한다.
오래된 범죄를 다시 돌아본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큰 고통이 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 범죄를 기억하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피해자들의 가족들 역시 시간의 흐름에 범죄가 묻히는 것보다는 많은 이들이 기억함으로써 어떻게든 끝을 보는 방향을 선택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직장에서 평범한 일을 할 때조차도 그 업무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투입되는 에너지와 시간이 달라지듯이, 장기 미제 사건에 많은 이들을 관심을 가진다면 단 한 건이라도 더 해결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번 읽고, 한번 더 기억해 두면 좋을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