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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헌법의 수호자 - 칼 슈미트

세발너구리 2022. 8. 24.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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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독일에서 당대 최고의 천재 법학자 '칼 슈미트'와 '한스 켈젠'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이름하야 '헌법 수호자 논쟁'.

독일 출신의 슈미트는 '불안정한 국회와 법률적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사법부는 헌법 수호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이를 맡아야 한다'라고 주장하였고, 오스트리아 출신의 한스 켈젠은 '대통령과 의회, 헌법재판소가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이론을 주장했다.

이 이야기가 법역사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슈미트의 이론이 히틀러 통치에 대한 이론적 정당성을 부여한 반면, 켈젠은 유럽의 헌법재판소 모델을 정립했기 때문이다.

 


 

슈미트가 주장하는 '헌법의 수호자'는 국가와 헌법의 안전과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위기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헌법을 해석하고 보호하는 권위적 존재를 말한다. 따라서 칼 슈미트가 말하는 헌법의 수호자는 단순히 헌법을 해석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헌정 질서 전체를 유지할 수 있는 최종 결정권을 가진 막강한 권력자로 그려진다.

 

슈미트는 기성의 입헌주의는 이론과 형식의 틀 안에 갇혀 있고, 이러한 경직성(절차와 형식)은 위기 상황에서 헌법을 지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헌법은 단순한 법이 아니라 국가의 기본을 이루는 주권자의 의지가 담긴 개념이므로 헌법의 수호자는 특별한 상황에서 막강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렇듯, 슈미트는 일반적인 법 규범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예외 상황'에서 헌법의 수호자가 능동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권자는 예외 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라는 슈미트의 말 역시 같은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이해된다. 

 


 

문제는... 슈미트가 헌법의 수호자로 대통령을 지목했다는 점에 있다. 그는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의 '비상대권 조항'이 대통령의 헌법 수호자로서 역할 수행에 있어 현실적인 근거임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비극적이게도 '비상대권 조항'은 히틀러의 나치당이 정권을 장학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근거 조항으로 활용된다.

 

※ 바이마르 헌법의 '비상대권'은 현재 우리나라의 '계엄'과 유사한 점이 매우 많았다. 국가 비상상태에서 대통령에게 특별한 권한이 부여됨은 물론, 일부 기본권을 제한하는 조치 역시 가능했다. 다만, 당시 바이마르 헌법에는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이 있었으며, 비상대권 발효 후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법률이 미비했다는 차이가 있다.

 

※ 당시 히틀러는 대통령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법률과 정치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함으로써 '비상대권 조항'을 활용한다. 히틀러는 '비상대권 조항'을 통해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법률적 정당성을 확보하였고, 이후 수권법(혹은 전권법)을 통해 독재 권력을 완성하게 된다.

 


 

결국, 칼 슈미트가 주장했던 '헌법의 수호자'는 민주주의와 권력 분립의 원칙을 위협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비판을 극복하지 못하게 된다. 만약 대통령이  '예외 상황'에 대하여 자의적으로 해석할 경우 헌정질서 자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대학 시절에 구매 후 고이 묻어 뒀다가 한참 뒤에 한 번 읽었던 책이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특별한 내용을 적어 두지는 않았었는데, 최근의 사태로 인해 검색 유입이 조금 늘어나는 것 같아 다시 한번 정리해 보았다.

 

어려운 내용임은 분명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도 분명한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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