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9 빚쟁이 (4) - 4 - 출근길은 언제나 불쾌하다.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으면 사방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체취가 느껴진다. 다음역에 도착하면 도저히 들어올 수 없을 것 같은 공간을 비집고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온다. 하지만 이런 고통은 서 있는 사람들의 몫에 불과하다. 앉아있는 사람들은 평온한 표정이다. 모두 서 있는 것이 현실이고, 앉아 있는 것은 성공한 것이다. 종점에 살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 우리와 시작점이 다른 것이다. 개중에 운 좋게 빈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간혹 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인생과 똑같다. 작은 인생을 경험하고 다시 큰 인생의 무대로 올라왔다. 쉼표 없는 인간은 실적이 좋지.. 2023. 12. 17. 빚쟁이 (3) -3- 알람인가 싶었는데 벨 소리였다. 쉼표 없는 인간이다. "야! 너 어디야! 이게 이제는 하다 하다 무단결근까지 하려고 해? 너 어디야?"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었다. "죄송합니다. 바로 나가겠습니다." "30분 내로 튀어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빨라야 1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어차피 서둘러 도착해도 점심시간.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느긋하게 샤워를 마치고 지하철 역으로 향한다. 점심때의 출근은 여유가 있다. 지하철에 사람도 별로 없고, 행여나 차를 놓칠까 허둥지둥 나가지 않아도 된다. 가벼운 지하철은 그 무게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지하철 창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머리를 백지상태로 만들어 간다. "왜 이제와!" 비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무실에 쉼표 없는 인간이 .. 2023. 12. 11. 빚쟁이 (2) -2- "어이! 늦는 다더니!" 오랜만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이다. 가운데가 변호사다. 그 옆에 친구는 대기업 회사원, 반대쪽 옆의 친구는 학원 강사다. 우리는 왁자지껄한 장소로 이동했다. "요즘 뭐 하고 지내?" "아들 크는 거 보는 재미로 살지? 너는?" "난 그냥 그렇게 산다. 얼마 전에 카메라 하나 사서 재미있게 가지고 놀고 있지." "사진 찍는 게 무슨 재미냐? 요즘에 핸드폰이 얼마나 좋은데? 완전 DSLR급이라니까? "뭔 소리야.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너 핸드폰 뭐 써? 야! 무슨 출애굽기 시대의 유물을 들고 다니냐? 박물관 가져가게? 이거 봐." "오! 이거 정말 비싸던데. 어떻게 샀어?" "우리에게는 통신사가 있잖냐." "그거 완전 바가지야. 따지고 보면 오히려 손해야!" "내일 나갈.. 2023. 12. 4. 빚쟁이 (1) -1-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잠을 늦게 잔 것도 아니고, 일찍 일어난 것도 아니다. 내일이, 아니 오늘이 휴일이어서 늦게까지 깨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아침에는 중요한 회의가 있어 지금은 깊은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시간이다. '아... 진짜 이 사람 못 쓰겠다.' 나의 단잠을 깨운 휴대전화에 표시되고 있는 이름 석 자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여보세요." 안 받을 수 없어 기운 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이보세요. 내가 지금 죽으려고 하고 있어요! 바로 당신 때문에!" 잔뜩 술에 취한 목소리다. 이 사람은 이틀에 한 번은 만취해서 자살하겠다고 전화한다. '의미 없다… 의미 없어.' 나는 속으로 그의 행동을 평가한 후 한숨과 짜증, 졸림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항변한다... 2023. 11. 27.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