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9 빚쟁이 (9) - 완결 - 9 - 6류로부터 동업 제안을 받은 지 일주일 가량이 지났다. 이제는 슬슬 답을 줘야 할 시기가 다가온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일주일 동안 고민한 적도 없었다. 갑자기 6류의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면 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떨쳐 버렸다. 마치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답이 나올 것 같이 말이다. 하지만 아직 나의 마음은 윤곽도 잡지 못한 상태이다. 지금 내 앞에는 6류가 서 있다. “생각 좀 해 봤냐? 시간이 좀 더 필요한가?” 시간... 시간이 참 야속하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내 편이었던 적이 없던 괴물 같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정말 모르겠어요. 단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 수학문제를 푸는 듯한 기분이에요. 문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2024. 3. 24. 빚쟁이 (8) - 8 - “어떻게 됐어?” 어쩌면 내 인생을 뒤흔들 수 있는 고민을 하면서 사무실에 들어섰다. 하지만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쉼표 없는 인간의 일갈이 날아온다. 바로 직전까지 넋을 놓고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든다. 쉼표 없는 인간은 나에게 이 세상 무엇보다도 효과 좋은 각성제인 것 같다. “다음 주까지 전부 입금한다고 합니다.” 쉼표 없는 인간의 입꼬리가 순간 꿈틀 한다. “좋아!” 쉼표 없는 인간은 엄청 호탕한 목소리로 한마디 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빙그레 웃는다. 왠지 정감 있다. “뭘 실실 웃냐?” 8류가 나에게 다가오면 히죽거리며 묻는다. “어... 형. 오랜만이네.” “자식이 말이야. 형님 얼굴이 안 보이면 전화도 하고, 안부도 묻고 해야지. 넌 애가 왜 그렇게 차갑냐.. 2024. 3. 23. 빚쟁이 (7) - 7 - 망할... 진짜 망했다. 어제의 그 사건은 나의 머리를 완전 휘저어 놓았다. 채무자 회사의 대리가 나를 무시하는 듯 비꼬는 말투로 말을 해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어젯밤의 일이 순서 없이 마구 뒤섞여 있다. 기억들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려고 몸부림친다. 소용돌이 마냥 내 머리를 휘젓는다. 숟가락으로 사정없이 휘저어 놓은 아이스크림 같이 뇌가 녹아 버릴 것 같다. “아니... 그러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운송비가 물건보다 비싸요. 이게 말이 되요?”평상시 같으면 뭐라고 답했을까. 아무렴 어떤가.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태이다. 머릿속이 모두 녹아내린 아이스크림 같다.“그런데 말입니다, 대리님. 만약에 나한테 정말 필요한 볼펜이 한 자루 있는데, 500원이에요. 그런데.. 2024. 2. 29. 빚쟁이 (6) - 6 - 눈을 떠 보니 오후 4시다. 참 잘 잤다. ‘천천히 씻고 나가야지.’ 약간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며 잠을 깨운다. 그리고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밖으로 향한다. 평일보다는 한산한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으로 향한다. 그리고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마주 보며 오랜만에 웃음을 지어본다. 나와 대기업 회사원 그리고 챔피언은 정말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당연한 수순과 같이 우리는 챔피언의 우승을 축하했다. 그리고 학창 시절의 겁 많던 그 아이의 과거를 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챔피언은 여유가 있었다. 챔피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아는 그 수많은 동창들 중에 챔피언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챔피언이었으니까. 어느덧 술이 우리.. 2024. 2. 26. 빚쟁이 (5) - 5 - 사무실에 돌아와서 전역장교 사건을 간단히 보고했다. 쉼표 없는 인간은 고개만 끄덕이다가 말했다. "고객사한테 제출할 보고서 작성해. 그리고 신규 사건 하나 더 있으니까 살펴보고. 이번에는 확실히 해! 너가 잘할 수 있는 일로 골라서 배당했으니까!" 자리로 돌아와 보고서를 작성해서 쉼표 없는 인간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담배생각이 났지만 신규업무부터 보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다. 사건은 간단했다. 채권자는 작은 운송업체였고, 채무자는 대기업이었다. 채권자는 채무자와 중국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전시할 물품의 운송계약을 체결했고, 계약금은 후불로 2억 2천만원이었다. 이후 운송이 완료되고 작은 운송업체는 대기업에게 운임을 청구했지만, 대기업은 운임이 과다하다는 이유로 6천만 원 만을 지급했다. 첨부된 서.. 2023. 12. 26.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