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의 생애와 업적, 실책 등을 다룬 책.
전반적으로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나, '탁월한 외교 정책을 펼친 군주'라는 부제에서 느껴지듯 긍정적인 평가가 좀 더 우위에 있다.
영화와 같은 미디어의 전파력과 균형외교에 대한 대중의 요구에 힘입어 광해에 대한 현재의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그는 그리 좋은 군주는 아니었다.
저자 역시 광해군의 균형외교 자체는 매우 높게 평가하지만 즉위 이후의 정치행보에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임진왜란 발발 당시 광해군은 수많은 왕자 중에 하나였다. 다른 왕자들에 비하여 총명하긴 했지만, 후궁에게서 태어난 것에 더하여 장자도 아니었기에 세자가 될 만한 지위는 아니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선조의 내심은 알 수 없으나 전격적으로 광해를 세자로 봉하고 본인은 북쪽으로 열심히 달아난다.
이러한 선조의 행동에 수 많은 신료들과 백성들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때 혜성처럼 등장하여 백성들을 단합하고 의병들과 정규군을 독려한 이가 바로 광해군이었다.
이렇듯 왜란 중 광해군의 행보는 매우 훌륭했다. 전쟁터 한복판을 누비벼 왕족 모두가 해야 할 의무를 홀로 해 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이랬던 광해군이 왕위에 등극하니, 신하들과 백성들의 기대는 컸을 것이다. 하지만 왕이 된 이후의 광해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계속 보이다 반정 세력에 의해 폐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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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가 폐위된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째는 폐모살제이다. 성리학을 근본으로 하는 조선에서 이 보다 좋은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광해가 정말 뛰어난 군주였다면 이것만으로 반정이 일어났을지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전후복구가 시급한데 윤리적인 이유로 일 잘하는 왕을 끌어내린다는 건 정치적으로 무리수다.
즉, 폐모살제는 반정의 중요 명분이었지만, 핵심적인 이유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명나라와 거리를 두고 금나라와 가까이 지냈다는 것이다.
많은 매체들이 광해의 외교방식에 서인이 불만을 품고 반정을 일으켰다고 묘사한다. 하지만 반정 이후 인조와 서인들의 외교정책 역시 광해군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친명배금을 앞세워 반정을 일으켰지만, 당시 조선에는 명나라를 지원할 자금과 인력이 없었다. 또한 명나라는 기울고 있고 후금은 날로 커지는 판에, 명분만으로 외교정책을 펼칠 정도로 당시의 상황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요컨대, 이 역시 명분 상의 이유에 가깝다.
세 번째 이유는 국가의 재정파탄이다.
광해군은 즉위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기에*, 왕위에 오른 뒤 왕권 강화에 집착하며 무려 5개의 궁궐 공사를 진행한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재건을 위해 당백전을 발행하며 국가 경제를 망친 것을 생각하면, 전쟁 직후 5개에 달하는 궁궐 공사가 미쳤을 영향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공사자금 충당을 위해 관직을 팔고 백성을 수탈하자 이에 대한 민중들의 원망이 쌓이기 시작한다.
* 광해군은 전란 중 명나라의 승인 없이 급하게 세자가 되었다. 전쟁 중에야 선조도 방패가 필요했고, 명나라 역시 걸핏하면 요동으로 넘어오겠다는 선조보다는 발 벗고 뛰는 광해군을 마음에 들어 했다. 하지만, 전쟁 이후 쓰임을 다한 광해군은 선조와 명나라로부터 외면을 받는다. 특히, 명나라는 조선의 세자로 광해군을 인정할 경우 명나라 태자 책봉 시 적자를 우선할 명분이 약해지기에 광해군의 세자 책봉에 계속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 대부분의 책에서 반정 세력이 내세운 폐위 명분은 '① 폐모살제, ② 백성 도탄 (국가 재정파탄), ③ 명에 대한 사대 소홀'의 순서로 소개된다. 다만, 본 리뷰에서는 실질적인 이유를 뒤에 두기 위해서 ②와 ③의 순서를 바꾸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반대 세력이 다른 생각을 안 할 수 없게 된다.
무리한 궁궐 공사로 백성들도 등을 돌렸겠다, 부모와 같은 명나라를 무시하고, 폐모살제 같은 좋은 명분까지 있겠다.. 반대 세력이 가만히 있었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그렇게 본인의 지지자들을 잃게 된 광해는 결국 왕위도 잃게 된다.
기본적으로 광해군은 북인 중 대북 계열의 지지를 기반으로 즉위했다. 하지만, 즉위 후에는 붕당 간의 균형 잡기에 매우 크게 실패했다. 실제로 당시 대북의 영수였던 '이이첨'과는 사이가 매우 안 좋았기에, 반정이 일어나자 '이이첨이 주도한 것이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위의 상황을 보면 즉위의 기반이었던 대북 세력과도 관계가 멀어진 것은 물론, 반정을 주도한 세력이 누구인지 감을 잡지 못할 정도로 내부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해석을 할 수 있게 된다.
전쟁을 몸소 겪은 광해군이 대외 흐름을 읽는 눈은 탁월했다.
하지만 당파들을 조율하고 여론을 장악하는 능력은 낙제점에 가까웠다. 만약, 그에게 외교능력에 걸맞은 내정능력만 있었어도 조선의 역사는 상당 부분 변했을 것이다.
지난 일에 아쉬워해 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다만, 광해에 대한 평가를 차지하더라도 그에 대한 분석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매우 유익할 것이라 생각하며, 추천 목록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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