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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인문교양

[책리뷰] 이토록 지적인 산책 -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by 세발너구리 2024.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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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현재의 출근길을 몇 번이나 다녀봤을까? 공휴일과 휴가를 제외하면 일 년에 250일 정도는 다니지 않을까 싶다. 왕복임을 감안하면 일 년에 500번 정도를 다닌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회사를 3년째 다니고 있다면? 같은 길을 무려 1500번 다닌 것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길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이웃한 회사, 눈에 확 들어오는 간판, 유명한 맛집 등은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좁은 골목 안에 위치한 허름한 가게, 몇 개월째 벽에 붙어 있는 전단지, 기하학적인 모양을 가지고 있는 철골조 등에 까지 신경 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지능력의 한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마도 관심의 한계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이토록 지적인 산책'은 우리가 늘상 접하지만 주목하지 못하는 것들에 주목하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11번의 산책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첫 산책은 이제 막 걷기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아들과 함께하는 내용이다. 우리에게는 사소하지만 그들에게는 흥미로운 사물들에 대한 관찰과 이해를 담고 있다.

 

이야기는 지질학자, 타이포그라퍼, 일러스트레이터, 곤충 박사, 야생동물 연구가, 도시사회학자, 의사와 물리치료사, 시각장애인, 음향 엔지니어, 반려견과 함께하는 산책으로 이어진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눈길과 감각을 통해 새롭게 느껴지는 산책에 대하여 적고 있다. 때로는 느긋하게, 때로는 흥미 있게 진행된다.

 


 

약 20년 전, 나는 다리 수술 후 몇 개월 간 한시적 장애를 가진 채 생활을 했었다. 멀쩡했던 두 다리를 가졌다가 한 다리를 못 쓰게 되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평상시에는 뛰어 올라가던 계단이 잔인할 정도로 높게 느껴진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던 화변기(쪼그려 앉아 사용하는 변기)는 아무리 급한 상황에서도 도저히 사용할 수 없다.

 

특히나 버스는 최악의 대중교통이었다. 급출발, 급정거, 급회전에 수시로 덜컥거리는 버스는 다리가 불편한 나에게는 기피대상 1호였다. 그 덕분인지, 나는 지금도 버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이제는 조금 달라졌겠지만, 당시에는 목발을 짚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리를 양보 받은 경험이 많지 않았다. 딱 봐도 다리를 다친 것에 불과하고, 워낙 젊고 건강해 보여서 그랬을 것이다. 게다가 자리를 피해 주는 분들이 대부분 연세가 있으신 할아버지들이었기 때문에 애써 서서 갔던 적이 많았다).

 

한편, 기존에는 잘 몰랐던 것들도 눈에 들어온다.

잠시 걸터앉아 쓰라린 겨드랑이를 쉴 수 있는 작은 시설물들, 애써 무릎을 올리지 않아도 되는 림프계단, 왼쪽 다리의 무게를 고스란히 감당하는 오른발의 부담을 한결 덜어주는 푹신한 바닥재 등... 평상시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

 


 

위와 같은 경험 덕분인지 책 내용 중에서도 시각장애인과 함께 한 산책이 인상 깊다. 다행히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장애인이 느끼는 불편함이 아니라, 장애인이기에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정보에 집중한다.

 

시각장애인들은 우리와는 다른 감각을 사용하여 위치를 인지한다. 소리의 반향, 바닥의 질감, 거리의 냄새, 심지어 바람의 방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현재의 위치를 추정한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누리고 있기에 느끼기를 포기한 감각들을 시각장애인과 함께 하면서 잠시나마 일깨우는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다.

 


 

가게의 간판을 관심있게 관찰하면 간판의 색과 글씨체를 통해 그 가게의 역사를 추리할 수 있다.

 

무심하게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사람의 걸음걸이를 살펴보면 그가 허리와 무릎 통증으로 인해 똑바로 걸을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짜증스러웠던 감정을 누그러트릴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양쪽 귀를 시끄러운 음악으로 채우고 두 눈을 가상현실에 고정한 채 걸어갈 때, 시각장애인들은 촉각, 후각, 청각 등 온몸의 감각기관을 총동원해서 우리를 피해 갔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을 조금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현재의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하게 존재하기에 인식하지 못했던 수 많은 정보를 새로운 각도에서 한번 더 바라본다는 것에 있을지 모르겠다.

 

무심코 지나쳤던 주변을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계기를 선사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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