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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소설

[책리뷰] 아Q정전, 죽음을 슬퍼하며 - 루쉰

by 세발너구리 2022. 8. 14.

중국 근현대 문학의 아버지라 불릴만한 루쉰의 단편소설 모음집. 세계문학 전집에 항상 실려 있는 아Q정전, 광인일기 등을 포함한 총 15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흐름이 당시에 쓰인 한국 단편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특별한 감흥 없이 읽어가던 중 문득 하나의 글에 마음을 빼앗겼다.

"죽음을 슬펴하며" 라는 제목의 이 단편은, 중국 혁명기를 살아가는 한 젊은 남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로를 사랑했고, 충분히 젊었기에 함께 사회의 인습에 저항하던 젊은 남녀가 결국에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남자 주인공은 현실에 짓눌려 자신의 연인에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이제 각자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하게 되지만, 며칠 후 아무런 통보 없이 아버지와 함께 떠난 연인의 빈자리를 느끼며 후회한다. 그리고 얼마 후 이제는 옛 연인이 된 그녀의 죽음을 듣고 또다시 온몸으로 후회한다.



변화의 격동기를 힘겹게 견뎌냈던 세대를 그려낸 글이겠지만, 나에게는 조금은 다르게 다가왔다.

이 글에서 남자 주인공은 나이며, 그가 떠나 보낸 연인은 내가 버린 수많은 것들로 투영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옳다고 믿고, 해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들을 현실과 타협하면서 더 이상 옳지 않다며 놓아버린 나의 모습.. 그리고 내가 놓아버렸기에 나를 떠난 것들을 그리워하고, 조금만 더 소중하게 대하고 조금만 더 품에 안고 있었어야 했다고 후회했던 나의 모습.. 이런 것들을 고스란히 소설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잡고있지 않아 떠났고, 내가 가라고 해서 떠났지만.. 진짜 내 옆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을 때 느껴지는 당혹감을 아무런 기교 없이 쓰인 한 중국인의 글에서 찾게 됐다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진다.

뭐... 인생살이에 어디 국경이 있고, 세대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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