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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법학, 사회학

[책리뷰] 불량 판결문 - 최정규

by 세발너구리 2022. 9. 13.

현직 변호사가 우리나라 사법체계에 대한 비판을 담은 책이다.

변호사라는 입장에서 쉽지 않았을 텐데, 직접적이고 신랄하게 법원의 태도에 일침을 가한다.

 


 

법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상호 갈등의 원인이 되는 두 요소가 있다. 바로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이다.

 

법적 안정성은 한마디로... '지금 내가 이 행위를 하게 되면 어느 정도의 처벌을 받을 것이다'라는 예측이 가능함을 말한다. 즉, 내가 한 행위에 대한 법적 처벌이 기존에 나와 유사한 행위를 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한편 구체적 타당성은 특정 사건을 다룰 때 일반적인 사안과는 달리 다루어야 하는 요소를 말한다. 통상 재판에서 양 당사자의 사정을 고려한 판결이 이루어질 때 구체적 타당성을 가졌다고 본다.

 

문제는 법적 안정성을 고려하면 구체적 타당성을 해하게 되고,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하면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마치 경제정책에 있어서 성장과 분배와 같이 말이다. 이상적으로는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며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함이 합당하겠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가. 이는 마치 성장하면서 분배를 하자는 것과 동일하다. 즉, 가능해 보이지만 막상 해 보면 잘 안된다는 것이다.

 

 

관련하여 실 사례를 들어보자(책에는 없는 내용임).

 

70대 노인 A는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여 살고 있었다. 입주 당시 A의 이름으로 입주하였어야 했으나 몇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A의 딸 B명의로 입주하게 되었다.

입주 후 5년이 지난 무렵 임대아파트 분양전환 공고가 나왔고, 자격조건은 '입주일 이후부터 분양전환까지 임대주택에 거주한 무주택자 임차인'이었다. A는 자신도 분양대상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주택공사에서는 A에게 퇴거를 요청하였다. 계약 명의자, 즉 형식상의 임차인이 A의 딸 B였기 때문이다(B는 유주택자).

당장 살 곳을 잃게 된 A는 임차인 자격과 관련하여 소송을 진행하여다. 그 결과;
(1심) 계약상의 임차인은 B이며, B는 주택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A 패소.
(2심) 이 사건 임차인은 '실질적 의미의 임차인'이 되어야 하므로, 임차인은 A가 됨. 즉, A 승소.
(대법원) 2심의 판결은 법률 해석의 본질과 원칙을 뛰어넘은 것으로 위법함. (즉, A 패소)

 

위 사례에서 2심 재판부의 판결 근거는 '구체적 타당성'이다. 당시 재판부가 말했던 '법의 해석과 집행도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 하여야 한다고 믿는다'는 말은 많은 언론기관을 통해 알려진 바 있다. 한편, 1심과 대법원의 근거는 '법적 안정성'이다. 당시 대법원은 '특별한 사안을 타당성 있게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법률 해석의 본질과 원칙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2심의 잘못을 지적했다.

 

마음 같아서야 2심의 편을 들고 싶지만, 마냥 그럴 수도 없다. 구체적 타당성의 오용은 법원의 자의적인 판단을 지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논리를 가능하게 한다.

 


보통 보수적인 입장일수록 법적 안정성에 집중하고, 진보적인 입장일수록 구체적 타당성을 좀 더 고려하는데... 이 책의 저자는 '구체적 타당성'에 좀 더 중점을 두고 법원의 태도를 비판한다.

 

판결문 'Copy & Paste'를 비롯하여 행정편의 등을 이유로 법원이 잘못한 점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안내한다(재판 일정을 준수하지 않는 재판부, 민원인에게 불친절한 법원 공무원, 재심 절차의 부당성, 판결 이유를 기재하지 않은 판결문 등).

 

※ 판결문 'Copy & Paste'는 사안별로 고유한 특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대법원 판결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하지만 달리 보면 법원 입장 역시 이해가 된다. 이미 검증되고 권위가 있는 문장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강화해 주며, 이는 곧 양적 · 형식적 공정함이 보장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더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심정적으로는 저자의 입장에 한 표 던지고 싶긴 하다. 기득권의 보호가 아닌 소외계층을 위한 별난 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의 보호가 아닌 취약계층의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면 구체적 타당성을 조금만 더 폭넓게 인정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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