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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기타

[책요약] 꿀벌의 민주주의 - 토머스 D. 실리

by 세발너구리 2022. 10. 10.

예전에 어딘가에서 책 내용을 듣고 읽을거리 목록에 올려 두었던 책. 생물학자가 꿀벌이 집터를 선정하는 과정을 관찰 · 연구하면서 발견한 꿀벌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적은 책이다.

 

후반에 가서 살짝 처지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전체적으로는 쉽고 재미있으며, 저자의 광기(?)어린 연구과정이 사진과 그래프로 잘 소개되고 있다.

 

※ 참고로, 책 판형이 '대국전'이다. 책꽂이에 꽂아 놓으면 손가락 한마디 정도 툭 튀어나옴

 


 

책은 꿀벌이 분봉(기존의 군집에 새로운 여왕벌이 탄생함에 따라 신규 군집을 형성하는 것) 하기 위한 준비과정부터 새 보금자리로 이동하는 모든 과정을 굉장히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① 새로운 여왕의 탄생 + 분봉 준비, ② 집터 선정, ③ 집터 이동 정도로 구분할 수 있겠다.

 

 

① 새로운 여왕의 탄생과 분봉 준비

 

잘 알려진 것처럼 꿀벌의 집단은 한 마리의 여왕벌과 함께 벌집에서 단란하게 살아간다. 그러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여왕벌은 공주벌들을 생산하게 되며, 먼저 태어난 공주 벌은 자신의 경쟁자인 나머지 공주 벌을 모두 숙청하고 기존 군집의 여왕으로 등극한다.

 

기존 여왕벌은 새로운 여왕벌이 탄생할 즈음 반강제적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하여 비행 가능한 상태로 비대한 몸집을 줄인다(이 과정이 다소 흥미로운데, 일벌들은 기존 여왕벌의 먹이를 줄이고 흔들고, 밀치고, 가볍게 물면서 무리를 떠나게 만든다. 약간 축출에 가까운 형태라고 생각하면 될 듯).

 

물론, 그냥 맨몸으로 쫓겨나는 건 아니고, 자신의 새로운 무리를 꾸려서 분봉을 한다. 이제 곧 떠날 새로운 무리들은 분봉을 하기 전에 충분한 에너지를 보유하기 위해 꿀을 잔뜩 먹는다고 한다.

 

책을 읽기 전에는 당연히 새로 태어난 여왕벌이 무리를 이끌고 분봉하는 줄 알았는데, 반대로 기존 여왕벌이 분봉을 한다. 어찌 보면 좀 더 노련하고 남은 수명이 짧은 군집이 분봉이라는 모험을 감행하고, 종족의 추가 번식을 이끌어갈 새로운 세대가 보다 안정적인 벌집에 남아 있는 것이 안정적인 세대교체의 방법인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이렇게 분봉을 시작한 집단은 노숙생활을 시작한다... 비유가 아니라.. 사진처럼 진짜 노숙생활이다.

 

꼭 나무열매 같이 생겼지만.. 나뭇가지에 꿀벌들이 서로 엉겨 붙어 있는 사진이다. 간혹 마땅한 집터를 못 찾으면 그대로 눌러앉아 벌집을 만든다고 한다.

물론, 이런 상태에서는 생존가능성이 극히 낮아질 것이다.

 

※ 나는 게으름과 귀차니즘이 극에 다다른 사람인지라 어지간해서는 표지 외에는 사진을 안 올리는데... 이 책은 좀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사진에서 설명하겠지만 이 책 저자의 연구에 대한 열정은 광기에 가까운 듯 싶다. 개인적인 존경심을 담아 책에 있는 사진 몇 개 올림.

 

 

분봉을 시작한 꿀벌들은 며칠 동안 노숙을 하면서 최적의 집터를 찾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그리고 이 책의 핵심 내용인 '집터 선택 과정' 즉, 꿀벌 사회의 민주주의가 시작되는 것이다.

 

 

② 집터 선정

 

노숙생활을 시작한 꿀벌들은 몸에 축적한 에너지를 모두 소비하기 전에 다른 집터를 찾아 이동해야 한다. 분봉 집단의 생존과 직결된 매우 중요한 작업인 만큼 확실하게 진행해야 하므로, 경험이 많은 꿀벌들이 집터 선정을 위한 정찰을 한다.

 

그런데... 꿀벌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 한창 움직이는 여름에는 한 달 조금 넘게, 움직임이 거의 없는 겨울에도 길어야 수개월이 고작이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새로운 분봉 집단 내에 새로운 집터의 선정 경험이 있는 꿀벌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런 이유로 원래는 먹이 징발대였던 꿀벌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정찰하기 위해 나선다. 다시 말하면, 사회 경험 많고 노련한 꿀벌들이 정찰대라는 막중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저자는 분봉 집단의 활동을 관찰하면서 꿀벌이 선호하는 이상적인 집터를 확인한다.

저자는 다양한 변수(입구 크기, 입구의 방향, 지면으로부터의 높이, 공간의 부피 등)를 반영한 인공 집터를 꿀벌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꿀벌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간을 알아낸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기존의 몇 가지 가설들을 확인하고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내는데, 바로 꿀벌의 의사결정 과정이다. 이들의 논의 과정 중 중요한 점을 뽑아 보면 다음과 같다.

(1) 정찰대들은 조사해 온 새로운 집터들을 집단에게 공유하고 광고한다.

     꿀벌들은 8자 모양의 춤을 추며 집터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데, 8자의 크기와 방향, 춤이 얼마나 격렬한가 등과 같은 정보를 통하여 해당 집터의 객관적인 조건과 정찰대의 선호도 등을 공유한다.
     (※ 저자는 꿀벌의 춤을 해석하기 위해 몇 가지 트릭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꿀벌이 공간의 크기를 측정하기 위해 공간 내부를 걸어 다닌다는 점을 알아내고 러닝머신 같은 기계를 만들어 실제 부피와 꿀벌이 인지하는 부피를 다르게 하는 등과 같은 실험들을 진행하기도 한다.... 진정 연구를 사랑하는 사람인 듯)

(2) 특정 집터에 대한 대중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을 진행한다.

     어떤 장소에 대한 광고를 접한 다른 정찰벌들은 해당 집터를 방문하기도 하면서 찬성의사를 표출한다.
     중요한 점은, 어떤 집터에 대하여 정찰벌이 엄청난 선호를 표시한다고 하여도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경우에는 차츰 해당 집터에 대한 광고행위를 중단함으로써 끝없는 논쟁을 회피한다는 점이다.
     또한, 단순한 다수결이 아닌 특정 정족수에 도달할 것을 조건으로 함으로써, 너무 서둘러 집터를 구하는 등의 실수를 방지한다. 실제로 저자의 실험에서는 대부분 최적의 집터가 거의 마지막에 발견되는 현상이 보였다고 한다.

(3) 여왕벌은 의사결정에 관여하지 않는다.
    
     논의 과정에 특징 중에 하나는 여왕벌이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찰벌들은 그들의 의견을 듣고, 검증하고, 합의함으로써 새로운 집터를 선정하는 것이지 그들의 의견을 정리하고, 보고하고, 여왕벌의 승인을 받아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위와 같은 과정들을 분석하기 위해 꿀벌 하나 하나를 추적 관찰한다. 다 똑같이 생겼는데 어떻게 추적하는지 의문이 생길 텐데.... 그 답은 아래의 사진과 같다.

 

그렇다... 각 벌의 등에 다른 색의 페인트와 숫자를 표시함으로써 그들이 방문했던 집터 후보지와 행동 패턴 등을 분석했던 것이다.

 

이쯤 되면 거의 연구에 중독되었다고 봐도 될 듯 싶다.

 

암튼, 저자는 이런 식으로 꿀벌 하나하나를 추적 분석함으로써 그들이 집터를 선정하는 과정을 알아낸 것이다.

 

 

 

집터 이동

 

새로운 보금자리가 선정되면 이제 이동을 준비한다.

 

정찰 벌들은 뭉쳐 있는 다른 일벌들의 몸에 자신의 몸을 밀착한 후 진동을 만들어 내어 일벌들을 자극한다. 그럼 그동안 조용히 있던 일벌들은 날개 근육을 데워 비행에 적합한 컨디션을 만들어 낸다.

 

대부분의 벌들이 비행 준비가 끝나면 정찰 벌은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약 1만 마리에 달하는 벌꿀들이 구름처럼 뭉쳐서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동한다.

 

 

 

참고로, 꿀벌들의 집터 선정은 대부분 최적의 집터를 선정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물론, 일부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의견 합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두 개의 집단으로 분산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의사결정 실패의 대가는 엄청나다.

 

※ 책에서는 군집의 이동을 안내하는 방식 등도 상세하게 적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크게 관심을 가진 부분이 아니라 여기서는 따로 적지 않는다.

 

책의 뒷부분에서는 영장류의 신경 체계와 꿀벌의 집단적 의사결정 체계의 유사성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역시 나의 호기심을 끄는 부분은 아닌지라 적지는 않았다. 혹시 이런 영역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마지막까지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싶다.

 

 


 

 

책의 말미에는 저자가 꿀벌들에게 배울 수 있었던 교훈들 다섯 가지를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첫째) 공동 이익과 상호 존중에 기초한 개인들로 결정 집단을 구성하라
(둘째) 집단적 사고에서 지도자의 영향을 최소화하라
(셋째)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라
(넷째) 논쟁을 통해 집단 지식을 종합하라
(다섯째) 응집력, 정확도, 속도에 대한 정족수를 활용하라 (부가 설명을 붙이면, 의사결정의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찬성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전체적으로 요약하면;

1. 꿀벌들은 일정 수준의 찬성표를 확보하지 않으면 결정하지 않는다.

2. 또한, 꿀벌들은 자기의 주장이 일정 시간 내에 충분한 동의를 받지 않을 경우에는 본인의 주장을 멈춘다.

3. 그 결과 그들의 의사결정은 대부분 최적의 답을 선택하게 된다.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 두번째 부분은 확실히 각인시켜야 할 부분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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