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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역사

[책리뷰] 초한전쟁 - 이동민

by 세발너구리 2023. 3. 15.

한고조 유방과 서초패왕 항우가 중국 패권을 놓고 싸운 전쟁사를 다룬 책.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 진나라의 패망 → 전국시대 왕조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다시 분열되는 중국 → 한나라의 중국 재통일 과정을 담고 있다.
 
여러 소설가들이 펴낸 '소설 초한지'와는 다르게 정사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표지에 강조되어 있는 것처럼 지리적 요소들에 대한 설명이 중간중간 계속 서술되어 있다.
 
또한 지리적 요소를 강조한 만큼, 상당히 많은 지도를 보여줌으로써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 참고로, '지리'라는 단어가 최광의의 의미로 사용된 것 같다. 지형적인 관점은 물론, 지정학적 요소 같은 경제, 정치적인 부분 역시 모두 '지리'라는 개념에 포괄시키고 있는 듯.

 


 
중간 중간의 지도가 각 제후들의 지정학적인 사정과 개개 전투에 대한 설명을 보조하고, 정사 위주로 쓰인 간결한 내용 덕에 상당히 속도감 있고 정확하게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전개의 특성상 인물에 대한 입체적인 묘사는 전무하다고 보면 된다.
 
여타의 초한지에서 상당한 비중을 보여주는 소하, 장량, 번쾌, 범증 등의 비중도 매우 적다. 그나마 한신의 활약이 비교적 두각 되기는 하나, 이 역시 절대적인 비중이 많지 않다.
 
지리적 요소를 강조한 사례로, 한신이 배수진을 펼쳐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하는 정형전투가 있다.
 

정형전투는 한나라 5만(공격) vs 조나라 20만(수비)의 전투인데, 당시 조나라는 성채에서 수비를 할 수 있었다. 이에 한신은 조나라군을 성에서 끌어내어 면만수라는 강으로 유인할 계획을 세운다.

한신은 1만의 병사를 면만수에 배수진으로 배치하고, 2천의 별동대를 별도로 꾸린 상태에서 나머지 병력으로 조나라 성채로 돌격한다.

조나라는 한나라의 적은 군대를 보고 그들을 면만수까지 밀어 붙히면 섬멸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성을 나와 맞선다.

당시 전장터는 좁고, 여기저기가 막혀있던 장소인지라 조나라군이 수적 우위를 마음껏 발휘하기 어려웠다.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조나라 군의 공세를 잘 버티던 한나라는 조나라 군사들을 성채에서 충분히 끌어낸 시점에서 면만수 방향으로 퇴각한다.

이윽고 면만수까지 도착한 한나라 군은 또다시 지리적 우위를 점하게 된다. 면만수에는 해발 300~500미터 정도의 구릉지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리 대기하던 1만의 병사는 높은 곳에서 적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한신이 별도로 준비했던 별동대는 비어 있는 조나라 군의 성을 쉽게 점령한다.

지리적으로 불리한 상태에서 마음껏 싸우지도 못하던 조라나 군대는 일단 성채로 퇴각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한 성채는 이미 한나라에 점령당한 상태였다.

 
한신 역시 적은 군사로 대군과 맞서기 위해 배수진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했음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지리적인 이점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장소를 택했다는 것과 적군의 심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자질이 깔려 있었다.
 
즉, 병사들을 극단으로 몰아붙여 '정신력으로 승리하자'와 같은 단순한 전략에 기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본 책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다.
 


 
삼국지, 열국지, 초한지 등 중국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쓰인 책들은 대부분 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등장인물들의 개성있는 캐릭터, 정사와 야사를 그럴듯하게 섞은 이야기들은 인물과 시대에 대한 몰입과 환상을 가져다주는 재미가 있다.
 
반면 본 책은 역사적 사실과 지리적 요인에 충실함으로써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시각을 전달한다.
 
예로, 기존 책에서는 한신이 토사구팽을 당하는 장면이 한고조 유방과 고황후 여씨에 대한 분노를 키운다. 하지만 본 책은 한신이 걸출한 군사적 재능에 걸맞지 않게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갖게 한다.
 
새로운 각도에서 초한지를 다시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추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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