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변호사가 변호사업을 하면서 발생한 에피소드 등을 기반으로 쓴 에세이. "사람이 싫다"라는 책 제목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변호사 일을 하면서 느낀 많은 회의와 사람들에 대한 실망들이 잘 적혀있다.
변호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 보면 좋겠다 싶는 책이다.
내가 법조계라는 생태계에서 플랑크톤의 지위로 일했던 지가 벌써 15년 정도 지났지만, 책을 보니 그쪽 세상도 참 안 변하는 것 같다.
책 내용 + 내 경험을 바탕으로 알아두면 좋을만한 법조계의 이야기를 적어 본다.
(1) '공감'이라는 것이 위험한 곳이다.
법원은 문제가 있어서 가는 곳이다. 그리고 그 문제들의 대부분은 '법률'과 '판례'라고 불리는 이미 해결됐던 수 많은 사례에 포섭된다. 그래서 사건을 받아 보면 대강 결과가 보이는 경우들이 많다.
플랑크톤인 나에게도 보이는 것이 고래인 변호사들에게 안 보일까? 당연 보일 것이다. 그런데 왜 변호사들은 사건을 수임할까? 간단히 정리하면 이유는 2가지다.
첫째, 백만원만 배상해도 될 것을 이백만원 배상하는 것을 막아준다. 형사 사건의 경우 집행유예 받아도 될 일을 실형 사는 것을 막아준다.
둘째, 변호사도 사업자이다. 돈 벌어야 한다. 일단 수임하고 본다.
변호사가 꼭 필요한 이유는 첫번째에 있다. 그럼 두번째는? 일단, 내 입장에서는 그냥 넘어갈만 하다. 대다수 변호사들이 수임단계에서 대략적인 결과를 암시해 주기도 하고, 소송 중 새로운 사실들이 확인되면서 사건의 방향이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데... 간혹 법정에서 지나치게 열 내는 변호사들이 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목소리 높이고, 상대방 변호사 비방하고, 필요 이상으로 재판을 질질 끈다. 이때 의뢰인들은 높은 확률로 그 변호사를 좋아한다. 자신과 '공감'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경우에는 높은 확률로 '법률지원' 대신에 '공감 연기'를 구매했다고 보면 된다(물론 사건의 성격에 공감대 형성이 필수인 사건들도 있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혹시 나의 담당 변호사가 법정 안밖에서의 액션이 지나치게 크나면??? 한번 의심해 보자. 다른 피드에서도 말했지만 법조계는 '생각보다는 공정하지만, 기대하는 것 보다는 비인간적인' 그런 곳이다.
(2)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모호하다.
잘 알려진 것과 같이, 고속도로의 제한속도는 분명히 있지만 기술적인 오차 등을 감안하여 보통 10% 정도는 봐준다고 한다.
100km 제한인 경우 102~105km 정도는 잘 안걸린다고 하는데.. 그럼 이건 불법인가 아닌가? 분명 제한속도 초과인데 카메라에는 안찍힌다. 불법을 봐주는 걸까? 아니면 현실을 감안한 현명한 법적용일까?
이런 일은 여기저기 많이 있다. 그것을 융통성이라 부르던, 아니면 주무관청의 업무해태라 부르던... 부르는 사람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법조계 역시 다르지 않다. 변호사들 중에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말하기는 그렇지만, 아무튼 애매하다. 물론 상대방 입장에서는 이 보다 짜증나는 건 없을 것이다.
(3) '전관예우'에 기대지 말자.
거물급들의 세상은 다르겠지만, 일반인들의 세계에서는 전관예우 보다 '경험'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된다.
일단 '전관예우'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10년전 법원장, 검사장... 이런 거 의미없다. 기업 임원도 이직하면 바로 쌩까는 곳이 사회인데, 법조계라고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러니 누군가 지검장 출신의 영향력이 막강한 사람을 잘 안다고 접근하면 일단 의심해 보자.
그리고 실제로 법원/검찰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대부분 대형 로펌으로 간다. 물론, 소규모의 지방법원/검찰청의 경우에는 좀 더 끈끈한 무언가를 기대해 볼 수도 있겠지만... 글쎄다... 나 같으면 차라리 실무 경험 많고, 체력 좋고, 기억력 쌩쌩한 변호사를 선임하겠다.
(그리고 전관예우 때문에 사건의 결과가 바뀌면 이건 분명 불법이다. 괜히 위험한 선넘기 놀이에 가담하지 않는게 좋다)
더 쓰고 싶지만, 일단 여기까지. 좀 더 정확하고 현실감 있는 내용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면 된다(광고 아님;;).
암튼, 법조계... 사람 참 지치게 만드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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