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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수필, 에세이

[책리뷰] 죽은 자가 말할 때 - 클라아스 부쉬만

by 세발너구리 2022. 10. 2.

독일의 법의학자가 15년간 법의학 일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12건의 사건을 담은 책이다.

 

내용은 흥미롭다. 기존에 알지 못했던 다양한 법의학 정보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법의학자라는 직업과 법의학 관련 분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금세 흥미를 놓칠 수도 있어 보인다.

 


 

법의학자는 기본적으로 "시체"를 다루는 직업이다. 이미 죽은 사람의 상처나 손상된 부위를 잘 살펴본 후 사망원인과 살인 흉기 등을 유추해 낸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꽤나 멋있게 그려내고 있는 직업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싶다.

 

일단, 사람이 근무 시간에만 죽는 건 아니다. 친구들과 배우자와 즐거운 연말을 보내는 와중에도 사고는 발생하고, 긴 근무 끝에 달콤한 휴식을 상상하던 순간에도 호출이 있을 수 있다. 갑자기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발견될 수도 있고, 이러한 상황이 나의 개인적 약속과 같은 사정을 배려해 주지도 않는다.

 

또한 매일 시체를 마주한다는 것은, 아무리 많은 경험을 쌓더라도,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저자 역시 부패한 익사체에 대한 적응곤란 혹은 거부감을 솔직하게 적기도 한다.

 

저자는 위에서 적은 사정들 때문에 일과 삶을 철저하게 분리한다고 한다. 사고 현장에서는 죽은 이를 보며 안타까워하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며 술 한잔 하는 것이 저자가 직업에서 느끼는 보람과 자긍심을 계속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한편, 책에서는 법의학 자체에 대한 정보도 다수 접할 수 있다.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전달하면,

 

독일에서는 체강(두개강, 복강, 흉강)이 열리는 경우 살인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보는데, 반대로 팔이나 다리를 찔리는 등의 경우에는 살인의 고의가 없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저자는 의학적, 경험적 지식에 비추어 서혜부와 같이 굵은 동맥이 지나는 위치를 칼로 찌르는 행위 등도 살인의 고의가 있으며, 이러한 사실을 대중과 사법기관에 전달하는 것을 법의학자의 사명 중 하나로 본다.

 

다른 이야기로, 교살에 관한 내용도 있다. 사람의 목이 외부에서 조이는 것과 어떠한 사정에 의해 내부의 압력이 증가해서 내부로부터 조이는 경우의 차이 등을 기술적으로 잘 전달하고 있다.

 

그밖에 의료과실과 관련된 이야기, 화재로 사망한 경우 등 평상시 법의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집중해서 볼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법의학자라는 직업이 가지는 숭고함, 저자가 실무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 고충, 법의학적 지식들이 골고루 섞여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묘하게 거리감이 느껴진다. 책에 녹아들기 힘들다.

 

내 지식과 공감능력의 한계 때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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