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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수필, 에세이

[책리뷰] 골든아워 - 이국종

by 세발너구리 2022. 9. 5.

우리나라 중증외상외과 분야를 이끌고 있는 이국종 교수님의 에세이.

저자 본인의 의료인으로서의 삶과 우리나라 중증외상분야의 역사가 동시에 담겨있는 책이다.

 


 

저자는, 아마도, 근래들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가 아닐까 싶다. 아덴만의 여명작전이나 판문점 북한군 귀순과 같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사건에서 총상환자의 생명을 살려냄으로써, 중증외상 (특히 총상) 대한 절대적인 권위자로 알려진 사람일 듯.

 

이러한 명성과 '의사'라는 직업만 놓고 보면,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성공한 사람의 성공론'이 돼야 하는데... 실제로 책은 '남들에게 외면받는 분야에서의 비루한 생존기' 정도로 요약된다.

 

아주대병원 내에서, 아니 우리나라에서 중증외상 환자들을 지켜내기 위해 본인과 동료들의 모든 것이 깎여 나가는 과정이 정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저 안타깝고, 대단하면서도 처량하다.

 


 

회사생활을 하게 되면서 많은 싫어하는 말들이 생겼지만, 가장 싫어하는 말 두가지를 꼽으라면 '조직의 결정'과 '회계는 경영의 언어'라는 것이다.

 

구성원들에게 약간의 이익이 돌아가면 무슨 성은이나 받은 것 마냥 특정인을 찬양하면서도 불이익을 주게 되는 행위는 항상 '조직의 결정'이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정말 낮음에도 불구하고 '언어'라는 기술적인 요소만을 들어 어떠한 것의 가치를 측량하는 것. 이 두 가지에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지나친) 혐오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이런 나의 지나친 혐오감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에 괜히 서글픈 마음이 든다.

 


 

책 초반에 어느 젊은 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군대까지 다녀와서 취업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 청년이 사고를 당하게 되어 인공항문을 착용하고, 다리 마저 잃게 된다. 그 젊고 아름다운 나이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 청년은 다시 일어난다. 사고로 잃게 된 것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기에 얻을 수 있는 것들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본인이 왜 태어났는지, 왜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잃은 것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에 집중했던 책 속의 청년과 같이, 왜 중증외상분야를 이토록 애 쓰는지 모르면서도 끝끝내 다시 한번 버텨내는 저자의 의지가 진한 향기로 다가오는 책이다.

 

뜻을 굽히는 대신 허리를 굽히는 저자의 마음이 정말 길게 여운을 남긴다.

 

이미 너무 유명한 책이지만, 아직 읽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꼭 읽어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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