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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소설

[책요약] 깊이에의 강요 - 파트리크 쥐스킨트

by 세발너구리 2022. 8. 26.

내친 김에 읽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3번째 책, '깊이에의 강요'이다. 이 책에는 총 4편의 짧은 글이 실려있다.


(깊이에의 강요)

재능있고 젊은 여자 예술가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어느날 평론가로부터 '당신의 작품에는 깊이가 없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끊임없는 고뇌에 빠져들게 된다. 이후 아무런 작품활동도 못하고, 일상적인 삶도 영위하지도 못하게 된 이 예술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주인공이 자살한 이후 언론은 앞다퉈 사건을 다룬다. 그리고, 주인공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평론가는 '그녀의 작품에서는 삶을 집요하게 파고 드는 깊이에의 강요를 느낄 수 있다'고 평론을 쓴다. 개X끼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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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공원에서 펼쳐지는 낯선 젊은이와 동네 최고수 노인 간의 체스 게임을 다룬 이야기.

젊은이는 거침없이 체스를 두는 반면 노인은 정석에 따라 이기는 체스를 둔다. 주변의 수 많은 구경꾼들은 전례없이 과감한 수를 두는 젊은 도전자를 응원하고 그가 이기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젊은 도전자는 체스에서 패하고 쿨하게 자기 갈 길을 간다.

노인은?? 게임에서는 이겼지만, 실제로는 진 게임이라는 것을 마음 속으로 인정하고 다시는 체스를 두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결국에는 패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젊은 도전자.
지지 않는 게임을 위해 끙끙대는 최고수의 노인.
그리고 본인들 스스로는 절대로 도전자와 같은 체스를 두지 못하지만, 어찌되었든 옆에서 응원하는 구경꾼들... (젠장.. 이건 내 얘기다 T_T)

이렇게 짧은 글로 어찌 이리도 유려하게 현실을 표현할 수 있는지..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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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뮈사르의 유언)

젊은 시절 보석 세공사였던 뮈사르라는 장인이 남기는 유언을 담은 글.

그는 어찌하다가 세상이 조개화 되어 결국에는 멸망하게 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본인이 이러한 비밀을 알게 된 대가로 몸이 조개처럼 딱딱하게 굳어지다 죽게 되는 병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감수성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인간은 조개와 같다는 게 이 글에 대한 해석인데, 난 잘 모르겠다. 내 생각에는 감수성 보다는 아집?? 이런 걸 표현한게 아닌가 싶다.

어서 듣도 보도 못한 '조개화로 인한 세상 종말설'에 집착해 모든 것을 여기에만 맞게 해석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 아닌가?

그러다 진짜 조개처럼 굳어서 죽는 것도... 자주 보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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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건망증)

이 글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라고 한다. 책 읽고 돌아서면 그 즉시 내용을 잊는 것에 대한 한탄?? 뭐 이런 것을 담은 글이다.

글의 주인공은 시를 읽다가 '너는 네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문구를 접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을 찾기 위해 서가를 두리번 거리는데... 분명히 읽었지만 내용을 기억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 무서운 건망증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 분명하고 비판적인 의식으로 그 위에 군림해서 발췌하고 메모하고 기억력 훈련을 쌓아야 한다'는 결심을 하고, 방금 읽었던 시의 문구를 잊지 않기 위해 메모하려 하지만 기억을 못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정확히 무엇이라고 씌어 있었는지 잊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의미는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 있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다. 어쨌든 이런 내용이었다. 너는 네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어떻게 보면 기억에만 치중하는 행태를 비꼬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그냥 흘러가는대로 하고 싶은 말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사견으로는 형식적인 기억보다는 의미의 이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하는 것 같다.


독일인이 쓴 짧은 글이다. 그리고 제법 오래된 책이다(우리나라에는 1996년 출간되었다).

그런데... 마치 한국인이 어제 쓴 글처럼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심지어 무섭기까지 하다.

자기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채 태도를 쉽게 바꾸는 평론가, 승부에만 연연하는 고수, 아무도 믿지 않은 이론에 갇혀 죽어가는 장인, 이해보다 암기에 집착하는 세태..

나도 모르게 이런 4가지 몹쓸 유형에 다 해당되게 변해가는 건 아닌지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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