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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법학, 사회학

[책리뷰] 언페어 - 애덤 벤포라도

by 세발너구리 2022. 8. 28.

"사법체계에 숨겨진 불평등을 범죄심리학과 신경과학으로 해부한다"는 책 소개 문구에 이끌려 선정. 뭔가 눈의 번쩍 떠질 정도의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파편화된 관련 정보를 집약해서 습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책 내용은 인간의 불완전한 기억과 감각, 직관 등에 의하여 사법제도 전반에 불합리와 불평등이 양산된다는 것이다. 즉, 백인보다는 흑인이 좀 더 잘못된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고, 전과자는 전과가 없는 사람보다 잘못된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 중 그 누구도 단순한 '감'으로 상대방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내 '감'이 통계와 일치한다고 하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범죄인을 유형화하는 '감'은 통계와 맞물려 강한 확증편향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수많은 객관적인 증거를 뒤로한 채 '감'에 이끌려 판단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사법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오류를 저지른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더욱 더 범죄 발생의 예방적인 측면에 힘을 기울어야 하고, 혹시 모를 사법적 실수를 줄이기 위해 수많은 장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같은 논리에서 범죄인의 처벌 역시 '징벌'이 아닌 '교화'에 힘써 재범을 방지하고 사회에 다시 귀속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시켜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책 말미에 있는 내용이 책 전체를 잘 요약하는 것 같아 옮겨본다.
 

"1만 년 전에는 살인 혐의를 받은 남자에게 정당한 절차를 보장하는 법원이나 재판이 없었고, 정의는 창끝에 달려 있었다. 1천 년 전에는 뜨거운 쇠에 지진 뒤에 여인의 손에 나타나는 화농이 유죄 증거였다. 100년 전에는 피부색 때문에 흑인들은 배심원도 변호사도 판사도 되지 못했다. 그리고 10년 전에는 18세 이전에 죄를 저지른 누군가를 사형시키는 것이 미국에서는 합법이었다. 분명 진보다. 그러나 이것이 중단 없는 전진은 아니었다. 힘든 오르막도 있고 맞바람을 안고 가기도 해야 하는 여정이었다. 에둘러 가야 할 때도 있고 후퇴를 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기회와 많은 관련이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물론 그 길이 평탄할지, 험난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역사는 말하고 있다."

형사정책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피고인과 범죄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과거에 대한 반성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을 발칵 뒤집은 엽기사건"에서도 말했지만, 범죄인에 대한 처우는 그 시대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피고인과 범죄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성은 옳다고 생각한다.
 
모든 이들이 내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당연한 얘기지... 하지만, 문제는 이런 얘기를 하면 꼭 이런 질문이 나온다는 것이다.
 
'네 가족이 피해자라도 그런 식으로 말할 것인가?'
 
물론 아니다. 만약 누군가가 내 가족을 해한다면, 나는 내가 가진 신념 따위는 뒤로 하고 사적 복수를 감행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내 가족의 생명을 빼앗았다? 그렇다면 나 역시 살인자를 목숨을 빼앗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이율배반적이라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나는 달리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비극적인 상황에 처해 있지 않고, 그렇기에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원치 않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나는 모든 이성의 끈을 놓칠 것이기에 극단적으로 감정이 인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될 뿐이다(형사제도에서의 제척, 기피, 회피 제도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본인 혹은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피해자가 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범죄자의 인권보호에 반대하게 만든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가진 주관적이며 추상적인 두려움이 다른 사람의 인권을 무시하는 실체적인 근거가 되고, 이를 기반으로 정책이 결정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분명 윤리적으로 완전하고 깨끗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경계함으로써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에 나의 불완전성이 장애물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세상은 이런 식으로 발전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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