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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소설

[책리뷰] 페스트 - 알베르 카뮈

by 세발너구리 2022. 8. 30.

실존주의 철학자로도 유명한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1940년 프랑스령인 오랑에서 페스트가 창궐하면서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그려낸 소설이다.
 


 
소설 "페스트"는 지옥 같은 배경을 바탕으로 크게 3종류의 인간 유형을 소개한다.

1. 사회적인 위기를 기회로 인식하는 유형
2. 페스트가 인간의 죄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냉소적이며 방관자적 입장을 보이는 유형
3. 현재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하기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보는 유형

 
글을 읽다 보면 우리 모두는 당연하게도 1번, 2번 유형을 비난하고 3번 유형에 감명을 받는다. 하지만... 현실은? 2번 유형에 다수의 사람들이 포함될 것이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1번 유형에 속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건, 가장 최악으로 보이는 1번 유형의 사람들은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이름이다'라는 식의 논리에 매몰되어 본인이 저지르는 잘못에 대한 인식 자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 역시 1번 유형에 속하면서도 스스로 2번 또는 3번 유형이라고 착각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으로 안타까운 것은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의 각 유형별 결과이다. 소설은 3번 유형인 주인공에게 숭고함을 느끼고, 뭔가 숙연한 기분을 갖게 하면서 마무리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1번 유형은 비극을 통해 창출한 이익으로 더더욱 재화와 권력을 축적해 나가고, 2번 유형은 세상사에 관심을 버린다. 우리의 영웅이라 할 수 있는 3번 유형은... 사건 해결을 위해 쏟아부은 경제적, 육체적 상처에 후유증을 느끼며 힘들게 버틸 뿐이다.
 


 
카뮈는 본인이 실존주의자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카뮈의 소설을 읽다 보면, 왜 사람들이 그를 실존주의자로 생각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페스트를 끝까지 읽은 후의 소감은.. 3번 유형에 대한 감사와 공경심 보다는, 현실과 소설을 오가며 느꼈던 진한 허무감이다. 그리고 그 허무함의 이면에는 '결국 현실에서 앞서 나가는 것은 1번 유형이다'라는 인식이 있다. 만약 카뮈가 이러한 나의 기분을 유도해 낸 것이라면.. 그는 진정한 실존주의자일 것이다.
 

*실존주의는, 쉽게 말해, 본질보다 실존이 우선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의자'의 용도이다. 의자는 앉기 위해 만들어진다. 따라서 의자의 본질은 '앉기'이다. 그렇기에, 누군가 의자를 '식탁'으로 사용하면 그에게 있어 의자는 그냥 식탁이다. 반면, 누군가 '식탁'을 '의자'로 쓴다면? 그건 의자가 된다. 즉 원래의 목적(본질)과 무관하게 실제 존재하는 것(실존)이 결국 그 대상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 세대는 조금 더 허무할지라도, 우리 후세들은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 가능성이 높다는 희망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 정도의 성과라면, 지금 내가 느끼는 허무함은 정말 값싼 대가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어떤 대상의 본질을 인정하고 실존을 개선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사상이 확고해 지길 바란다.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 존중하는 그런 세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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